손주가 낯을 가리는 순간은 생각보다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거나, 부모에게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면 괜히 마음이 서운해질 수도 있습니다.
자주 보러 갔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이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면,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싶기도 합니다.

낯가림은 거절이 아니라 성장 과정의 한 부분에 가깝습니다.
예로 저의 아이만 해도 그 전주까지 잘 놀던 할아버지(제 아빠)에게 낯을 가리고
가까이도 오지 못하게하여 나란히 걷지도 못하고 집안에서는 아이는 주방에 할아버지는 거실 소파 끝에 앉아있어야 했습니다.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양육자 이외의 사람에게 낯을 가리는 것은 정상적이고도 건강한 성장과정입니다. 이걸 이해하는 순간부터 조부모의 태도도 훨씬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낯가림은 관계의 실패가 아니라 발달의 과정입니다
아이가 낯을 가리는 시기는 대체로 부모와의 애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특정 사람에게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건강한 신호로 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어도 막상 눈앞에서 아이가 울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예전엔 안 그랬다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감정을 계산해서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저 가장 익숙한 사람에게 의지하려는 본능적인 반응일 뿐입니다.
아이를 키워보면 알게 됩니다. 이 시기의 아이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 곁에 붙어 있으려 합니다.
그래서 낯가림은 거부가 아니라 애착의 표현에 가깝습니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는 순간, 서운함은 조금 줄어듭니다.
조부모님들이 해야 할 첫 번째 태도는 ‘설명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래?”라고 묻거나, 억지로 웃게 하려 하기보다 그 반응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억지로 가까워지려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빠른 길입니다.
정말입니다!! 낯가리는 아이를 보면 본능적으로 달래고 싶어집니다.
장난감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안아보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나 아이를 키워본 경험으로 보면, 억지로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는 오히려 시간을 더 필요하게 만듭니다.
아이에게는 속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도에 스텝에 맞게 자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속도를 존중해주는 태도가 관계를 더 빨리 안정시킵니다.
멀리서 조용히 웃어주고, 눈을 맞추려고 애쓰지 않고 (눈만 마주쳐도 운답니다)
부모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경계는 서서히 낮아집니다.
낯가림은 대부분 시간이 해결합니다. 그리고 또 찾아오고 또 자연스럽게 언제 그랬냐는듯이 사라집니다.
오늘 울었다고 해서 내일도 반드시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마음은 빠르게 변합니다. 그 변화를 기다려주는 어른의 여유가 더 중요합니다.
이유를 찾으려하지 말고 가나다라 순서처럼 원래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서운함은 자연스럽지만, 오래 붙잡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조부모도 사람입니다. 손주가 밀어내는 듯한 반응을 보이면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괜히 더 다가가고 싶어지고, 더 잘해주고 싶어집니다. 아기가 아무것도 모른다지만 저의 아버지 말로는
섭섭한 감정까지 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본 입장에서 느낀 건, 이 시기에는 감정보다 안정이 먼저라는 점입니다.
조부모가 서운함을 드러내면 부모도 함께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안절부절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마음속에서 한 번 정리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시기일 뿐이다’라고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은 훨씬 가벼워집니다.
아이의 낯가림은 결국 지나갑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는 태도가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손주가 낯을 가리는 날도, 웃으며 먼저 다가오는 날도 자연스럽게 생기고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모두 성장의 일부입니다. 급하게 당기지 않아도 기다려주면 관계는 아이와 함께 충분히 자랍니다.